2009년 9월 16일 수요일

성전환자 강간죄 객체 인정 - 판례변경?!

 대법원 제3부(주심 : 신영철 대법관)는 지난 9월 10일, "성전환자도 부녀로 인정할수 있다"며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확정지었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3580 판결)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한가지 의문. 분명 대법원의 (적어도 강간에 있어서) 기존 의견은 "성전환자는 부녀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선, 이번 판결을 살펴보자.

 

 판결문은, 기존 판결(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은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법률적으로 여자여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 있다. 판결문이 인용하고 있는 96도791 사건의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이후 아래에서 인용하는 판례는 밑줄만 봐도 이해할 수 있으므로 밑줄만 봐도 무방)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라고 하여 객체를 부녀에 한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서 부녀라 함은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불문하며 곧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형법 제297조에서 말하는 부녀, 즉 여자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도 위 발생학적인 성인 성염색체의 구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하여 성선, 외부성기를 비롯한 신체의 외관은 물론이고 심리적, 정신적인 성,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수행하는 주관적, 개인적인 성역할(성전환의 경우에는 그 전후를 포함하여) 및 이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나 태도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대판 1996. 6. 11, 96도791)

 즉 여자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것과 더해 사회적 인식까지 고려하여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 함께 판결문은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을 인정한 판결(대법원 전원합의체 2006. 6. 22. 선고 2004스42 판결)을 인용, 성전환자가 법률적으로 여자임을 인정하고 있다.

1. 성(성)의 결정과 성전환자의 성
  가. (전략) 종래에는 사람의 성을 성염색체와 이에 따른 생식기·성기 등 생물학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하여 왔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생물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귀속감 및 개인이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 적합하다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태도·성격적 특징 등의 성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 즉 정신적·사회적 요소들 역시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대법원은 이미 ‘사람의 성은 성염색체의 구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하여 내부 생식기와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의 외관은 물론이고 심리적·정신적인 성과 이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나 태도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 참조)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나. 위와 같이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데에 여러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은 위 각 요소들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특히 생물학적 측면의 성은 출생시 곧바로 확인될 수 있지만 정신적·사회적 측면에서의 성이 생물학적 측면의 성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출생 당시에는 쉽사리 알 수 없다가 출생 후 성장하면서 비로소 개인이 인식하는 성귀속감과 수행하는 성역할이 생물학적인 성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다. 성전환증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도, 남성 또는 여성 중 어느 한쪽의 성염색체를 보유하고 있고 그 염색체와 일치하는 생식기와 성기가 형성·발달되어 출생하지만 출생 당시에는 아직 그 사람의 정신적·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성을 인지할 수 없으므로, 사회통념상 그 출생 당시에는 생물학적인 신체적 성징에 따라 법률적인 성이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출생 후의 성장에 따라 일관되게 출생 당시의 생물학적인 성에 대한 불일치감 및 위화감·혐오감을 갖고 반대의 성에 귀속감을 느끼면서 반대의 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 역시 반대의 성으로서 형성하기를 강력히 원하여, 정신과적으로 성전환증의 진단을 받고 상당기간 정신과적 치료나 호르몬 치료 등을 실시하여도 여전히 위 증세가 치유되지 않고 반대의 성에 대한 정신적·사회적 적응이 이루어짐에 따라 일반적인 의학적 기준에 의하여 성전환수술을 받고 반대 성으로서의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를 갖추고, 나아가 전환된 신체에 따른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만족감을 느끼고 공고한 성정체성의 인식 아래 그 성에 맞춘 의복, 두발 등의 외관을 하고 성관계 등 개인적인 영역 및 직업 등 사회적인 영역에서 모두 전환된 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그 성으로서 인식되고 있으며, 전환된 성을 그 사람의 성이라고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아니하여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볼 수 있다면, 이러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앞서 본 사람의 성에 대한 평가 기준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신체적으로 전환된 성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할 것이며, 이와 같은 성전환자는 출생시와는 달리 전환된 성이 법률적으로도 그 성전환자의 성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판[전합] 2006. 6. 22, 2004스41)

 즉 이번 판결은 위와 같은 두 판결을 살려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전향적인 판결이니만큼 우선은 환영할만 하다. 기존에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하지 않았던 판결은 사실상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한 개인을 인정하지 않은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이번 판결에서 과거 판결(96도791사건)을 인용함에 있어, '자신이 주장하는 데 필요한 부분'만은 발췌해서 인용하였지,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 과거 판결의 판결 요지는 분명 "성전환자를 여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살펴보자.

신체의 외관은 물론이고 심리적, 정신적인 성,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수행하는 주관적, 개인적인 성역할(성전환의 경우에는 그 전후를 포함하여) 및 이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나 태도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위 피해자가 비록 어릴 때부터 정신적으로 여성에의 성귀속감을 느껴 왔고 위의 성전환 수술로 인하여 남성으로서의 내·외부성기의 특징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남성으로서의 성격도 대부분 상실하여 외견상 여성으로서의 체형을 갖추고 성격도 여성화되어 개인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요소인 성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의 내·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성전환 수술을 한 경위, 시기 및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일반인의 평가와 태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위 피해자를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이유 설시에서 강간죄의 보호법익 등에 관하여 선뜻 납득할 수 없는 근거들을 내세우는 등 흠이 없지 아니하나, 위와 같은 취지에서 판단한 결론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내세운 바와 같은 부녀의 개념이나 강간죄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수 없다.(대판 1996. 6. 11, 96도791)

 이 판결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다. "성전환자를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 없다." 대법원이 이번에 판결하면서 이제는 '사회통념 역시 변화'하였다고 인정하여 '성전환자를 여자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하였다면, 전원합의체에서 명시적으로 이 판결을 변경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소부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 이렇게 서로 상반된 판례가 공존하게 된다면,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case by case로 처리하겠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통상적인 바대로 하자면, 성전환자를 하나하나 요건을 따져서 너는 여자, 너는 여자 아님, 이렇게 하겠다는 듯하다. 사실 판결문 자체에서도 그런 느낌이 드는 구절이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해자는 성장기부터 남성에 대한 불일치감과 여성으로서의 귀속감을 나타내었고, 성인이 된 후 의사의 진단 아래 성전환수술을 받아 여성의 외부성기와 신체 외관을 갖추었고, 수술 이후 30여년간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현재도 여성으로서의 성정체성이 확고하여 남성으로 재전환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고, 개인상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여성으로 인식되어, 결국 사회통념상 여성으로 평가되는 성전환자에 해당된다고 봄이 상당하고, 이 사건 피고인도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식하여 강간범행을 저질렀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성전환자인 이 사건 피해자를 법률상 여성으로 보고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고 한 제1심판결을 유지한 원심의 판단은 적법하고, 거기에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의 해석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대판 2009. 9. 10, 2009도3580)

 즉 조건이 안맞으면 '사회통념상 여성으로 평가될 수 없는 성전환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런 생각이 '오해'이길 바라지만, 전원합의체에서 처리안된것을 보면, 오해가 오해일것만 같지는 않다.

 

 최근 형법개정안 논의에 의하면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의견대로 개정된다면, 굳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을 가장 중요시해야할 사법부에서, 아직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형법 개정을 기다리기 보다는 명시적으로, 이와 같이 의견을 바꾸었다는 의사표시를 했어야 했다. 이는 성전환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의 인권에 있어서나, 소수자의 보호를 가장 마지막에서 보호해 주는 법원에서 이에 대한 명시적 의견을 내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덧, 이번 판결 원문을 첨부한다. 직접 보고 싶으면 참조하시길.

 

덧2, 신영철 대법관은 꿋꿋하게 삼성사건 이후로도 남아계시는 듯하다. 판결 자체는 꽤나 진보적인 판결이 나오기는 하지만(지난번 '여성용 자위도구'의 음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도 그렇고), '주심 신영철 대법관'이라는 단어를 보기는 참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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