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2일 수요일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섹스가 친밀함의 상징이기는 하다.

그러나 섹스자체가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것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섹스가 상징하고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깨뜨릴 수도 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좀더 험난한 과정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누군가와 섹스를 나누는 것은,

마치 책을 사두고 그것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중략)

 

"침대로 끌어들이기 전에 서로에 대해 좀더 친밀한 과정을 거쳐야겠지."

"이를테면?"

"음, 질투를 갖게된다든가 맹세하는 것, 솔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거나

토하기, 코 후비기, 발톱깎는 모습까지 보여주는것?

 

(중략)

 

따라서 친밀해지는 것은 유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친밀함을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호의적인 판단-사랑할 가치가 거의 없다고 생각되는-이 초래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Kiss & Tell)> 중에서

 

 

 

... 반면 미성숙한 사랑

[나이와는 거의 관계가 없기는 하지만]

이상화와 실망 사이의 혼란스러운 비틀거림이며,

환희나 행복의 감정이 익사나 섬뜩한 구토의 인상과 결합되어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며,

마침내 답을 찾았다는 느낌이 이렇게 헤맨적이 없다는 느낌과 공존하는 상태이다.

[절대적이기 때문에]

미성숙한 사랑의 논리적 절정은 상징적이든 현실적이든 죽음이다.

 

 (중략)

 

미성숙한 사랑은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다.

 

(중략)

 

금욕주의의 핵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실망시킬 기회를 주기 전에 스스로 실망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금욕주의는 다른 사람과의 애정에서 생기는 위험,

사막에서의 삶보다 더 큰 인내심이 있어야 직면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항하는 서툰 방어였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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